필수의료 살리기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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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002회 작성일 22-09-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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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뇌지주막하출혈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필수의료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사건 당시 검사 결과 파열된 뇌동맥류의 형태가 수포성 뇌동맥류(blister-like aneurysm)로 진단되어 개두술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병원에는 개두술을 담당하는 교수진이 단 두 명밖에 없었는데 그중 한 명은 외국 학회 참석 중이었고 나머지 한 명도 개인 휴가로 인해 부재중인 관계로 환자를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여 수술했으나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병상이 2700개가 넘는 국내 최고의 병원에서 뇌지주막하출혈 환자의 개두술을 할 수 없어 다른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사건은 신경외과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나라 필수의료의 부끄러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사건 이후 의료계 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 언론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 8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여야 3당 국회의원 18명이 공동 주최한 '필수의료 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제시한 필수의료 살리기 해법으로는 의사 수 확대, 병상 수 감축, 중소병원 감축, 의료지원인력(PA) 활용, 해외의사 도입, 공공임상교수제,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기관 인력 투자 보전 등 다양한 정책적 제안이 나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주무과장은 필수의료 관련 해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는데 "필수의료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100명에게 이야기를 들으면 100가지 방안이 나온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며 "수가, 정원, 교육 등 한가지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8월 19일 국회 토론회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의료 공급자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참석하지 않았는데 최근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한 정부의 릴레이 간담회를 통해 나타난 의료계의 필수의료 해법 역시 각 진료과별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인력 확충을 위한 필수의료 과목 전문의 고용을 위한 재정 지원, 담당 부서 설립, 특별법 재정, 운영 비용 보상, 불가항력 무과실 의료사고 면책 적용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필수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분야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필수의료의 범위에는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중증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 관한 의료서비스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문제 또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하여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의료서비스가 해당된다.
이처럼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의료가 붕괴한 이유는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 필수의료 분야의 낮은 수가가 원인이 되는 경우다. 우리나라 의료수가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볼 때 48 정도로 OECD 국가의 평균인 72에도 훨씬 못 미친다. 2017년 기준 자연분만 수가는 미국이 1만 1200달러이고 한국은 1040 달러에 불과하다. 이번 아산병원 간호사 사례에서 필요한 뇌 혈종제거를 위한 개두술도 약 142만 원에 불과하여 일본의 662만 원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둘째,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사고나 분쟁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부담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는 의료인이 악의적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책임보험, 조정·중재, 합의, 형사처벌 특례조항 등 비형사적 구제 방법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중환자나 응급의료 분야 대신 미용·피부·도수치료와 같은 소송 위험이 적은 분야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셋째,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 역학적 변화에 따른 의사 인력 수급의 불균형도 문제다. 저출산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견되고 있었음에도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분야의 의사 인력 수급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 미흡했다.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필수분야 의사의 배치나 전체 전공의 인력 수급 계획에 인구 역학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히지 못하다 보니 의사 수급의 불균형이 나타났다.
넷째, 최근 사회 전반의 워라밸 추구도 영향을 끼친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신세대 젊은 의사들은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희생을 감수한 선배 세대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전공의 인기 과목도 힘들고 위험한 수술을 하는 필수분야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업무 부담이 적고 편한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학교 성적 최상위 학생들의 지원이 몰린다. 그뿐만 아니라 의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풍조도 사라진 지 오래고, 본캐릭터(본캐)인 의사 생활 이외 또 다른 부캐릭터(부캐)를 추구하거나 때로 '내과 박원장'으로 유명해진 의사 출신 웹툰 작가처럼 부캐가 본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간단치 않아 보이는 상황의 필수의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문제가 복합적인 만큼 해결 방법도 간단치 않기에 분명한 원칙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와 함께 필수의료의 범위에 대한 개념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필수의료에 대한 정확한 정의나 개념도 없는 가운데 당장 눈앞에 드러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어물쩍 넘어가면 필수의료 문제는 지속해서 대두할 것이다.
둘째, 필수의료 살리기는 진료과목이 아닌 진료 행위, 질환명, 의학적 상황 등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한다. 자칫 필수의료 논의를 비인기 과목 살리기나 단지 수가 보전 차원에서 접근하면 필수의료 문제의 해법은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 보건의료 인프라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모든 민간의료기관이 이미 공공의료를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공의대나 공공의료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논의는 산으로 가게 된다.
올 초 우리나라에 코로나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했을 때 전국의 의료기관들이 적극 진료에 나서면서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사망자가 속출한 일부 OECD 국가들과 달리 매우 효율적인 의료대응을 한 바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필수의료 붕괴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각종 원인에 대해 논의할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저수가 문제, 의료분쟁, 인구역학적 변화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부, 의료계, 국민이 지속해서 함께하는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이번에야말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장 토론을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다이어트법이 2만 가지가 넘는 것처럼 필수의료 살리기에 대한 해법이 이해 관계자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필수의료의 확실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있는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드러난 필수의료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붕괴한 필수의료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죄(罪)다.
출처 : 의협신문(http://www.doctor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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